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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2014.09.03 11:24

jayuroinc 조회 수:3055

정의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말.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연중 으뜸 명절이다.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한다.

 

가위나 한가위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가배는 가위를 이두식의 한자로 쓰는 말이다.

 

어원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추석’이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용어라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추석 무렵을 중추(中秋) 또는 월석(月夕)이라 하는데,

『예기(禮記)』에 나오는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추석날 밤에는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하여 월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중엽 이후 한자가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이 사용하던 중추니 월석이니 하는 말을 합해서 축약하여 추석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중추절이라 하는 것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누었을 때

추석이 음력 8월 중추에 해당하므로 붙은 이름이다.

 

유래

 

추석의 시원(始原)이나 유래에 대한 명확한 문헌 자료는 없다.

 

중국의 『수서(隨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는 “8월 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준다.”라고 했다.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도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이면

서로 하례하는 예식을 여는데 왕이 잔치를 베풀고 또 해와 달의 신에게 절을 한다.

 

팔월 보름이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쏜 자에게는 상으로 포목을 준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인들은 산신(山神)에 제사 지내기를 좋아하며 8월 보름날이면 크게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이 모여서 활을 잘 쏜다.”라고 하였다.

 

우리 문헌에는 12세기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추석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나지만 그 시원을 밝히는 내용은 아니다.

 

 이 자료를 통해서 추석이 신라 초기에 이미 자리 잡았으며,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신라본기(新羅本紀)」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조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왕이 육부(六部)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을 짜고,

 7월 16일부터 날마다 육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했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게 하고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功)의 다소를 살펴 지는 편은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라 한다.

 

이때 진 편의 여자들이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 하였는데

그 소리가 구슬프면서 아름다웠으므로 뒷사람들이 그 소리를 인연으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

 

”특히 여자들이 패를 나누어 길쌈을 했다는 것은 두레길쌈의 효시로 볼 수 있는데,

당시 길쌈이 이미 보편화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실 추석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의 의복을 장만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옷감을 짜는 풍속은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는데 세시명절은 농경에 적응하여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세시명절인 한가위는 고대 농경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신라시대에는 이미 일반화된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추석의 관습이 가락국에서 왔다고 했다.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은 그의 저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당시 산동(山東) 근방에서 살던 신라인들이 절에서 가배명절을 즐겼던 사실을 기록했다.

 

특히 그는 신라인들이 발해와의 싸워 이긴 기념으로 추석을 명절로 즐겼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기록된 육부(六部)를 방증할 수 있는 자료가 발굴되기도 했다.

 

신라가 육부였음은 1988년 4월 15일 경북 울진군 죽변면(竹邊面) 봉평리(鳳坪里)에서 출토된 신라 비석의 내용으로 확인이 된다.

비석은 법흥왕 11년(524)에 세워진 것으로, 육부 중의 하나인 탁부 출신의 박사가 건립하였다고 하여

가배풍속과 관련된 육부의 존재가 분명해졌다.

 

이처럼 신라시대에 이미 세시명절로 자리 잡던 추석은 고려에 와서도 큰 명절로 여겨져 9대 속절(俗節)에 포함되었다.

 

고려 9대 속절은 원정(元正, 설날)·상원(上元, 정월대보름)·상사(上巳)·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중구(重九)·팔관(八關)·동지(冬至)였다.

 

이 명절들은 조선시대로 이어졌고 조선시대에 추석은 설날, 한식, 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꼽혔다.

우리나라에서 추석 명절을 비롯한 세시명절의 위상은 근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세시풍속이 농경의례로서 농사라는 생업과 직결되어 있었던 것만큼

산업사회 이후 공업이 생업의 중심이 되면서 농촌사회가 변화하여 세시명절이 약화하기 시작했다.

 

추석 또한 전통적인 성격이 퇴색하여 차례와 성묘하는 날로 축소되었지만,

국가 차원의 공휴일로 지정됨으로써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서 큰 명절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관

 

추석은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하며, 가을의 한가운데, 곧 가을 중의 가을인 명절이다.

 

추석 무렵은 좋은 계절이어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5월은 농부들이 농사를 잘 짓기 위하여 땀을 흘리면서 등거리가 마를 날이 없지만

 8월은 한해 농사가 다 마무리된 때여서 봄철 농사일보다 힘을 덜 들이고 일을 해도 신선처럼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니

그만큼 추석은 좋은 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듯이 추석은 연중 으뜸 명절이다.

특히 농촌에서 가장 큰 명절이니 이때는 오곡이 익는 계절인 만큼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거운 놀이로 밤낮을 지내므로,

이날처럼 잘 먹고 잘 입고 놀고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새삼 간절해진다.

 

달의 명절로도 일컬어지는 추석에는 풍요를 기리는 각종 세시풍속이 행해진다.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차례와 같이 엄숙한 세시풍속이 있는가 하면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는 세시놀이 역시 풍성하게 행해진다.

 

추석은 애초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로서 이날 명절식으로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올려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이 중요한 행사다.

 

추석 전에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하여 여름 동안 묘소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준다.

 

추석날 아침에는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차례는 대체로 4대 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부터의 관행이다.


 

최훈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