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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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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망각으로 극심한 괴로움을 절감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살기도 한다. 사람이 갖고 있는 喜怒哀樂의 편견이 극에 달하면 이것을 극복하는 인간의 능력이 한계에 오기 때문이다. 사람은 과거의 아픔을 잊어 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지만, 국가는 절대로 과거의 아픔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되어서 상황이 나아졌다고 국가가 처한 근본을 망각하는 어리석은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휴가철에 들리는 한 두 개의 화두는 나의 마음을 분개하게 한다. 우리는 불과 61년 전의 6.25를 아직 살아있는 전쟁이라는 개념에서 지우면 안 될 안보불안국가요, 남남갈등으로 국가의 주요 기능이 마비되는 현실을 외면하면 또 다른 사회갈등의 파장을 만드는 이념갈등사회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우리의 과오는 우리를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애써 떠벌릴 일은 아니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금도 그 덫에서 신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 필자처럼 정치학자입네 하면서 현실정치에 몸담으면서 그 현장을 보아온 식자라도 있어서 이러한 위험성을 눈치 보지 않고 지적해 온 사람이 있음을 한국의 현대사는 훗날 기억했으면 하는 조그만 바람이다. 이러한 현실고백, 양심고백의 글이나 행동은 종종 正義良心이 대접받지 못한 세상에서는 스스로의 출세 길을 막는 족쇄로 항상 현실 속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분단체제로 통일을 해야 하는 우리로써는 우리 사회내의 진정한 민주주의 완성의 문제, 즉 불평등 심화의 해소, 계층 간의 갈등대립 해소 등 보다 더 큰 북 한의 군사적 불안정성 앞에서 노출되어 있는 엉거주춤한 모습일 것이다. 언젠가는 맞아야 할 회오리가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더 지적하고 준비해야 한다.

 

 

냉정한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한국가가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강성대국이 되는 길은 비판의 대상에서 성역이 없어야 하고, 최소한 양심을 갖고 있는 엘리트들이 이를 정직하게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건강한 우리가 원하는 수준만큼 지배엘리트를 갖고 있지 못하다. 있어도 왜곡되고 밀실에 숨어서 제 소리를 내기 보다는 일신의 영달을 더 꾀하는 무리들이 더 많은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고 현실을 고발하는 언론의 기능이 중요하건만 국민들은 아직 그들에게 큰 신뢰성을 발견하고 있질 못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우리사회를 무너뜨릴려고 하는 국가사범들을 선처하는 탄원서를 낸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 등 일부 종교단체지도자들의 종교적 아량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현실을 무시한 종교행위는 더 큰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 줄 것이란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깨달음을 더 중시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종교적 행위로써야 모든 것이 용납되지만, 국가의 불안한 안보 앞에서 어설픈 종교적 용서를 구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위치가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필자는 다시 한 번 그들의 엄정한 현실인식을 주문하고 싶다. 북 핵이 위험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일부의 그릇된 일부의 인식도 우리게 큰 안보위협인 것이다. 어설픈 종교적 관용이나 용서는 더 큰 현실의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일을 만들 수도 있음이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겪어온 아픈 이념의 현대사를 지금 끝났다고 속단하고 낭만적인 접근으로 일 부 젊은 층의 바른 현대사 인식을 방해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박태우 교수의 푸른정치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