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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왜역적·친일파

2014.09.06 12:54

jayuroinc 조회 수:4204

 배달겨레 선비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미워서 ‘일(日)’이라는 오래도록 폐기했다. 옛이름 ‘왜(倭)’를 썼다. 옛날에는 왕을 거역하면 ‘역적’으로 되었던 것이 일본 침략이 있고부터 나라와 겨레를 해롭게 한 놈을 ‘역적’으로 일컫게 되었다. 일본군을 등에 업고 정변을 일으킨 ‘김옥균·홍영식·박영효·서광범·서재필’이 처음으로 나타난 ‘부왜역적(附倭逆賊)’이다. ‘갑신 5적’을 비롯한 ‘을사 5적’, ‘경술 7적’이 부왜역적이었다.
 
 실국시대 ‘왜왕’이 누구누구가 우리 일본을 도왔던 사람이라고 하면서 작위와 돈을 주었다. 작위와 돈을 받은 사람이 89명이었다. 작위를 받지 못한 사람이 셋이었는데, ‘필립 제이슨·윤치호·리용구’가 그 세 사람이었다. 아비가 작위를 받았기에 윤치호는 받지 못했고, 아메리칸으로 일본 간첩 노릇을 했기에 필립이 받지 못했고, 일진회장 리용구는 백수여서 받지 못했다. 일본 사람들은 김옥균으로부터 리완용에 이르는 92명을 ‘우리 친일파’라고 불렀다. 3대 독립협회장 윤치호는 1945년 8월 15일 왜왕이 한 항복방송을 듣고 곧장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라를 팔아서 일본에 넘겼던 사람은 망국에 대한 원인 행위자이기에 그 죄목이 ‘부왜역적’으로 된다. 실국시대에 일본에 붙어서 협력한 사람은 그 죄목이 ‘부일협력자’로 된다. 자기 나라를 잃도록 만든 부왜역적 89명은 왜왕한테서 돈을 받았기에 부왜역적 89명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 나라 잃은 시대 부일협력자는 왜왕으로부터 돈을 받은 일이 없기에 재산을 몰수할 수는 없다. 기미만세의거에 주동이었던 최린은 아깝게도 변절했다. 1922년부터 시작하여 1938년에 발행한 총독부 <조선사> 편수에 참여한 사람들은 ‘부일협력자’로 된다. 이들은 ‘사적(史賊)’이라는 별도 이름으로 불릴 사람들이다.

33인중 변절하지 않은 사람은 오직 만해 한 용운 뿐이 었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만해선생 한 분만이 변절하지 않았다고 발표 했다가.
변절한 후손들에게 큰 화를 당할 뻔 했다.
변절자 손자들은 나라와 겨레일은 관심 밖이고 오로지 년금 이 얼마 더 오르느냐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법원은 모든 증거를 대었더니 내손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바보 언론은 한 줄도 보도 하지 않았다.


님의침묵  
                                               한 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